가족통합예배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대하 20:13)

1“한 지붕 세 가족”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학교는 지적능력과 신체발달 단계를 따른 학습을 합니다. 현대교회는 실용주의 사상에 물들어 가족들을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청년부로 나누어 이산가족을 만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세대를 분리시키는 ‘분리목회’입니다.

청란교회는 ‘분절’이 아닌 ‘통합’,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지향합니다.

2“부-자-청”으로 함께 합니다.

‘과거에 미래가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대가족제도의 강점과 기능(치유, 도제교육, 멘토링)을 되새김질 해 봅니다. 기억의 세대, 현재의 세대, 비전의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가족공동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었습니다.

청란교회는 ‘부자청’(부모-자녀-청소년)의 3세대가 함께하는 가족공동체를 꿈꿉니다.

3“소란”스럽다고요. 우리에게는 그 소란스러움이 정상이 됩니다.

교회마다 설치된 유아실은 ‘유배실’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갈급한 새내기 엄마들은 전쟁을 치르다 돌아갑니다. 말씀잔치에 누구도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시장터 같은 분위기에서 타협과 양보, 수용과 배려, 인내를 배웁니다. 절간 같은 고요함이 아닌 재래시장 같은 역동을 즐깁니다.

청란교회는 소란스러움에서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을 학습합니다.

4“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가 구현됩니다.

자녀들은 부모들의 뒷꼭지를 보면서 배웁니다. 부모가 예배시간에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고 기도하고 찬양하는 것을 보면서 아이들은 예배자로 서게 됩니다. 예배 중 남몰래 훔치는 아빠의 눈물이 자녀들의 심장 박동이 됩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아이의 꿈이 됩니다.

청란교회는 서로에게 좋은 격려자요 지지자가 됩니다.

5“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부부 주일”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달이 다가오면 상처받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싱글맘, 이혼가정, 소년소녀 가장들에게는 고통의 달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정’은 저들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기 일쑤입니다. 가정 이야기는 한두 주일 행사를 치르고는 온데 간 데 없습니다.

청란교회는 잔치 날 잘 먹으려다 굶어 죽는 일 없이 1년 내내 ‘가정 중심’을 지켜냅니다.

6예배와 예전이 살아 있습니다.

교회력을 따라가고 교회의 절기를 지켜나가면 예배와 설교가 더 풍성해집니다. 성경이 말하고 가르치는 중요한 절기는 무시되고 있습니다. 예배조차 찬양하는 공연무대가 되어 버린지 오래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객석의 관람객이 되어 있습니다.

청란교회는 예배를 예배되게 하고 제대로 된 예전의 바른 회복을 지향합니다.

7찬양대와 교사회가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찬양연습을 한다고 가족들이 흩어집니다. 교회 봉사 때문에 아이들은 내팽개쳐집니다. 교회 안에 봉사자는 느는데 예배자는 적습니다. 부모는 부름 받은 첫 번째 교사입니다. 찬양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고 모두가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란교회는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봉사자가 아니라 예배자로 세웁니다.

8오후에는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창의학습이 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함께 싸온 포트락(potluck)으로 ‘애찬’을 나누는 등 다양한 학습활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가 어우러져 자연생태체험부터 시작해 다국어체험, 재래시장 돌보기 등 다양한 삶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청란교회는 ‘삶이 묻어나는 예배, 예배가 묻어나는 삶’을 지향합니다.

9교회의 예배를 넘어서 가정 예배가 살아 숨 쉬어야 합니다.

‘가정 같은 교회, 교회 같은 가정’의 핵심은 가정예배에 있습니다. 언약가정으로서 말씀묵상과 기도와 찬양이 넘쳐날 때 바른 신앙의 계승이 이뤄집니다. 현실은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기에 다양한 창의적 방법으로 말씀 앞에 섭니다.

청란교회는 “Worship first”가 아닌 “Worship Only”를 지향합니다.

한 지붕 한 가족을 꿈꾸는
청란교회의 통합예배는
세대분절을 넘어서 통합에서 오는 지혜와 꿈을 -Commitment
학교구조가 아닌 밥상공동체의 친밀감을 –Intimacy
백화점이 아닌 재래시장의 생동감을 -Passion
용광로가 아닌 모닥불의 따스함을 -Healing
지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