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예배

기본성구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예배자로 창조되었고(사 43:7,21)
하나님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구원하셨다.(엡1:12)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과 진리로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4:24)

핵심가치

  • 1 청란교회는 봉사자보다 예배자로 서는 게 우선순위입니다.
  • 2 청란교회는 종교개혁자들의 예배 모범을 모델로 합니다.
  • 3 청란교회 성도들은 예배학교를 통해 예배를 학습합니다.

예배 설계

종교개혁은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에 대한 권위’로 바꾸는 저항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구습에 대해 질문했고 소통했습니다. 때로 저항하여 바로잡았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교회로 세워진 저희 청란교회는 묻고 또 물으며 바른 예배를 지향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갈 것입니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의 말씀(약속)에 기초합니다.

1청란교회의 예배는 주기도문의 틀을 따릅니다.

중세 천년의 암흑, 주기도문(마 6:9~13)은 네비게이션과 같았습니다. 주기도문에 모든 복음의 요약이 있습니다. 청란교회는 선교초기 천막집회의 틀을 벗어나 종교개혁가들이 내세웠던 참된 예배의 요소들을 포괄하는 개혁주의 예배를 지향합니다.

2청란교회는 ‘들리는 말씀’과 ‘보이는 말씀’이 함께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설교 듣는 것을 예배라 착각합니다. 예배에 ‘들리는’ 말씀(설교)은 있는데 ‘보이는’ 말씀(성찬)이 사라졌습니다. 저희는 성찬이 연중행사가 아닌 매주 성찬을 행합니다. 비로소 반쪽짜리 예배가 아닌 온전한 예배가 이루어집니다.

3청란교회는 축복으로 시작해서 축복으로 마칩니다.

바울의 문안인사(고후 13:13)가 아닌 아론의 축도(민 6:24~26)로 복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이 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축복하면, 내가 친히 이스라엘 자손에게 복을 주겠다.”(현대어 성경 민 6:27)

4청란교회는 성가대 중심이 아닌 ‘회중 찬송’을 지향합니다.

복음송 보다는 찬송가를, 찬양단이나 성가대보다 온 성도의 참여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예배음악도 삼위 하나님을 노래하는 곡을 선곡하려 애씁니다. 악기의 사용에도 신중을 기합니다.

5청란교회는 성도들의 아름다운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천로역정의 기독도가 천신만고 끝에 도달하게 되는 세상의 끝, ‘최종 순례지’와 같은 곳이 아닙니다. 내 가정과 교회 삶의 현장이 곧 천국이어야 합니다. 청란인들은 세속성자가 되는 꿈을 꾸며 주께로 ‘Go Back’합니다. 나아가 소통과 공감, 위로와 격려, 기도로 그 삶을 지지합니다.

6청란교회는 모든 성도가 대제사장이 됩니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 2:9)임을 온 몸으로 확인하는 예배 체험 장치가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르며 똑같이 입례합니다. 휘장이 찢기는 광경(마27:51;히9:1-28)을 보며 지성소에 들어서게 됩니다. 예배의 미학이 있습니다.

7청란교회는 ‘사유의 언어’가 아닌 ‘행동의 언어’를 즐깁니다.

‘들을 귀 있는 자, 들으라’(막 4:23) 강대상에 새겨진 말씀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쉐마’입니다.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서 순종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저희는 말씀 끝에 ‘내게 찾아온 로고스’를 나눕니다. 청란인은 ‘1톤의 생각’보다 ‘1그람의 실천’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8청란교회는 헌금으로 또 하나의 신앙고백을 합니다.

사람이 가장 회심하기 어려운 것은 머리도 가슴도 아닌 지갑의 회심입니다. 청란교회는 메가 처치가 아닌 사랑의 메가 파워를 자랑합니다. 저희는 헌금의 50%를 가정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씁니다. 성경은 이릅니다. “자기를 위하여 미래에 든든한 기초로 재물을 쌓을 것이다.”(딤전 6:18~19).

9청란교회는 무릎기도와 자녀를 위한 축복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시편 95:6). 아버지가 무릎을 굻을 때 자녀들이 춤춥니다. 교회가 무릎을 꿇을 때 열방이 춤을 춥니다. 동시에 자녀들을 위한 축복기도(마19:13)로 다음세대를 지지하고 축복합니다.

10청란교회는 ‘모이는 교회’가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를 꿈꿉니다.

영성의 길은 ‘왕의 길’(via regina)이 아닌 ‘노동의 길’(via laborosa)입니다. 청란인은 종교개혁가들의 직업소명설을 ‘노동이 기도이고 기도가 노동’이라는 말로 읽어냅니다. 우리는 예배(service)하고 흩어져 세상을 섬기는(service)는 일에 헌신된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